드라마 (1971) MB C

 아버지 MBC – TV 일일드라마 (1971.3.1~10.1) 출연 : 최불암, 이대엽, 오영일, 도금봉, 김혜자

이 작품은 지금부터 23년 전인 1971년 3월부터 10월까지 184회 방송된 MBC-TV 연속극이었다. 제목 자체부터 독특하고 소재도 효!였기에 선뜻 끌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방송사 제작진에서 적지 않은 문제가 제기돼 흥행성에서 남녀 간의 사랑은 배제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는가. 서서히 핵가족이 싹트기 시작하면서 노부모에 대한 효심은 이조시대의 낡은 유물에서 멀어지고 있지 않은가.

할 수 있어, 할 수 없어로 목소리가 커지자마자 끝내는 조중출 MBC 사장실에까지 호출될 지경이다. 나는 사장실에서 작가를 믿어달라고 몇 달 전 공전의 대히트를 쳤던 개구리 남편의 작가를 믿어달라고 했다.

1984.12.26 조준출 전 MBC 사장 사망 ※ 6~8대 MBC 사장 조준출 (재임기간 1964.12.15 ~ 1971.6.30)

사실의 얘기는 잠시 뜸했지만 KBS 실화극장을 말하지 않을 수 없지만 1994년 10월 실화극장이 첫 방영됐다. 나는 그때 중앙정보부의 대북정보국에 근무하면서 실화극장을 중심으로 제작비를 지원하고 실제 작품에도 관여했다. 또 내가 대본을 처음부터 썼으니 주변의 시선은 절로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편 방송계에서는 김동현만 쓰는 이유를 말해라. 정보부 자료로 누가 못 써?라는 말에 나는 1970년 1월자로 사표를 냈고 그 첫 작품이 개구리 남편이었다.

※ 개구리 남편 출연 : 최불암, 김혜자, 박근형, 도금봉, 백일섭, 주연가정과 사회에 연결돼 비애를 느끼며 사는 직장인의 비애를 그린 드라마로 탄탄한 직장인 이창호, 처가 덕에 사는 임국진, 부부싸움으로 나날을 보내는 박일웅이 세 가정을 통해 현대 직장인의 생태를 그렸다.

▶유부남 과장이 신입 여사원과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을 그려 당시 파격적인 소재로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젊은 여비서에게 열등감을 느껴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넣은 과장 부인(김혜자),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묘사된 여비서(주연) 등 건전하지 못한 캐릭터 묘사로 비판을 받았지만 이에 대해 작가 김동현은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예방주사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1970년 11월 21일 서울민사지법 항소일부는 개구리 남편이 부실방송을 했다는 문화공보부의 고발에 따라 과태료 20만원에 처한다고 판결했고, 이는 한국 방송프로그램이 법에 의해 처벌받은 첫 기록이었다.김혜자는 드라마 방영 도중 큰딸을 무사히 출산했다.

그놈의 반공작가 어용작가 소리를 모면하려고 그야말로 제2의 탄생을 외치고 나온 게 아버지였다. 첫 방송은 초등학교를 정년퇴직한 아버지가 어느 날 부인과 사별하면서 시작된다. 누가 아버지를 모실 것인가. 큰 문제로 떠올랐지만 큰아들은 강원도 광산에서 일하고, 작은아들은 부잣집 딸과 신혼생활을 하느라 서로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서 결혼한 딸이 그 어려운 시집살이의 환경 속에서도 아버지를 위해 헌신하는 이야기가 벌어진다. 일종의 여권 신장이라고나 할까. 딸도 아들과 동등하다고 할까. 어쨌거나 딸은 출가 외인이라는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떠오른 것은 이 작품의 연습시간이었다. 오후 1시부터 시작해 밤 10시에 끝나는 사투가 아닌 사투연출 유길촌씨가 연극인 출신이고 또 출연하는 아버지(최불암), 딸(김혜자), 남편(김성옥), 시어머니(정애란), 맏며느리(도금봉)가 연극인이었기에 충분히 짐작이 간다. 장남 김상순이 나는 작품을 위해 빼 달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지금도 김상순의 순수한 마음에 나는 가끔 쓴웃음을 짓기도 한다. 지금은 무모하지만 한심한 훈련 장면을 볼 수 없다. 강압이라도 어쩔 수 없이 했더라도 그때와 지금은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 연습이 끝나자 연출가 유길촌씨를 집으로 데려다 함께 밤새워 콘티를 짜게 했다.

이처럼 8개월 동안 변함없는 연습과 시간과 연출과 공동생활을 해온 보람이 있었는지 20회로 끝나기로 한 연속극은 184회까지 시청률을 얻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작가로서의 월권도 있었을 것이고, 갈 곳 가리지 않고 따라다니는 횡포와 욕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내 작품에 바치는 정성! 열정, 욕심. 한마디로 내 자신이 꼴찌임을 스스로 인정하지만 그래도 나는 결코 그런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 작가 생활에서 처음으로 홈드라마를 사용한 것은 개구리 남편과 아버지 두 편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를 끝내라고 다시 중앙정보부의 요청이 들어왔다. 실화극장의 인기가 떨어지니 당신이 만든 프로이니 다시 써 달라고 해서 나는 다시 어용작가, 반공작가라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난 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또 누가 뭐라 하든 그 시절 나는 내 생각대로 의미 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동현 작가)

유길마을에게 하루 연속 드라마 아버지는 제목으로 주듯 아련하고 든든한 추억으로 가슴에 자리하고 있다. 또 30여 년간 드라마를 연출하면서 일관되게 느낀 것이지만 아버지와 함께한 8개월의 시간은 또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의 장이었다. 작가 김동현 선생님을 만났고, 또 최불암 김혜자 씨 같은 장인 기질에 투철한 연기자들을 만났다. 더욱이 아버지를 계기로 평생의 반려자인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은 내게는 더없는 행운이었다.

이 같은 행운과 추억의 가교였던 아버지는, 그러나 그 출발은 숱한 갈등과 어려움을 내포한 난맥상을 보여 왔다. 우선 MBC가 일일드라마를 기획할 때부터 이런 갈등의 소지가 충분히 있었던 것이다. 당시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아씨와 여로에 버금가는 드라마를 만들자는 의견이 낙마했다. 그것도 부장, 국장 선거가 아닌 사장실에서 직접 기획을 한 것이다. 이런 열의가 바로 MBC 하면 드라마 왕국이라는 등식을 성립시켰을지 모른다.

어쨌든 이런 야심찬 기획 의도 아래 본인이 담당 PD로 낙점됐다.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이 참을 수 없는 중압감 속에서 나는 김동현 선생을 작가로 기용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의 벽이 앞을 가로막는 양상을 초래했다. 왜냐하면 김동현 선생은 개구리 남편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뒤 다음 작품에서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아 시청률이 떨어진 전과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작가에게는 색다른 주기가 있다고 믿는다. 한번 훌륭한 작품을 내놓은 작가는 다음 작품에서는 쇠잔한 모습을 반드시 드러낸다. 나중에 다시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아직도 후배 연출가들에게 잠언으로 들려주는 내 신념이다.

이런 신념에서 나는 김동현 선생님을 고수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절충안이 100회분의 시놉시스를 미리 제출하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상황으로서는 작가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김동현 선생과 본인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또 김동현 선생님은 약속기일 내에 작품 개요서를 다 써 왔다. 요즘으로 치면 미니시리즈의 시나리오 분량은 충분하다. 이런 어려움 끝에 아버지는 출범했다. 하지만 시작하면 그 끝은 달콤하다는 듯 시청자들의 반응은 상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그래서 100회 방송 예정이 거의 두배나 된 184회까지 연기하게 되었다. 어쨌든 내 신념은 적중한 셈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 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조중출 사장이 이런 말을 했다는 후일담을 들었다. 식사를 하면서 아버지를 바라보던 조 사장은 예의 그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유길촌의 그 말이 오기는 황소의 고집이었지만 그래도 드라마는 참 잘하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간접적으로나마 아버지의 성공을 인정받았다는 건지. 이 작품이 성공하기 전에는 많은 스태프와 연기자의 도움 또한 지나쳐서는 안 된다.

당시 신예 연기자 김혜자 씨의 연기도 일품이었고 특히 최불암 씨의 독창적인 연기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버지로 출연한 최불암 씨가 슬픔을 억누르면서도 어쩔 줄줄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었다. 연기를 시작하기 전 카메라를 들이대자 최불암 씨가 만류한다. 남자의 눈물을, 그것도 아버지의 눈물을 직접적으로 보여 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조금 등을 돌려 등을 보인 상태로, 단속적으로 흐느끼는 모습을 찍게 했다. 그때 아 그렇구나 하면서도 나도 이 장면을 찍으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런 연기자들의 독창적이고 열정적인 연기가 아버지를 더욱 돋보이게 한 것 같다. 최불암 씨와 김혜자 씨의 이 시대 연기가 그동안 한국 연예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 잡은 게 아닌가 싶다. 당시 시청자들을 울렸던 드라마 아버지는 내 개인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로 자리 잡았다. 앞에서 말한 대로 ‘아버지’를 통해 지금의 아내를 만났기 때문이다. 방송국에 처음 드나든 아내를 소개받았을 때 그의 아버지는 이 아버지의 광팬이었다. 담당 PD였던 나는 서 씨의 아버지와 친해질 수 있었다. 아버지가 나의 가정을 이끌어 주었듯이. 이번에는 다시 한 번 요즘의 아버지로서 다시 만나고 싶다. 원고 마감에 철저했던 김동현 선생님의 건강을 기원하며.(유길촌 현 MBC 미술센터 사장)

유길촌(1940.7.380세) 전북 완주생. 방송 연출가, 공연 제작자 1962년 연극평론가 1962년 음악평론가 1967년 TBC 동양방송 프로듀서 1969년 MBC 문화방송 프로듀서 이적 1989년 MBC 문화방송 프로듀서 퇴임 1989년 중앙대 전임교수 1990년 동국대 전임강사 1992년 MBC 미술센터 사장 1998년 MBC 미술센터 사장 직위 퇴임 1999년2002년 극단 유시어터 대표